파도와 흔들림 사이, 미야즈 해수욕장의 기억
파도와 흔들림 사이, 미야즈 해수욕장의 기억
푸른 하늘 아래 반짝이는 은빛 모래사장, 잔잔한 파도가 발등을 간질이던 미야즈 해수욕장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오랜만에 떠나온 일본 여행길, 그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곳에서의 시간은 더없이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햇살 아래 흩어지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었다. 나 역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밀려오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그 평화는 갑작스러운 흔들림과 함께 깨졌다. 처음에는 마치 배를 탄 듯 미미한 떨림이 느껴지더니, 이내 온몸으로 전해지는 강한 진동에 주변의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간,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해변은 순식간에 긴장과 불안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나 역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지진을 경험한 적은 있지만, 낯선 타지에서 맞닥뜨린 지진의 공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다행히 침착하게 대피를 유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높은 곳으로 이동하라는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해변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위에 드리워진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파도는 평소와 다름없이 잔잔하게 밀려왔지만, 방금 전의 격렬한 흔들림은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힘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한동안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여진에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해변에는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연인들은 조심스럽게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날의 흔들림이 깊은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미야즈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그 위를 가득 채웠던 평화로운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동시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지진의 순간 또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경험으로 각인되었다. 자연의 위대함과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 미야즈 해수욕장에서의 특별한 하루였다. 파도와 흔들림, 그 두 가지 기억이 묘하게 공존하는 그곳은, 그래서 더욱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특별한 장소로 남아있을 것 같다.

익숙한 떨림, 낯선 안도감
미야즈 해수욕에서의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하게 빛나는 바다는 떠나가는 나를 조용히 배웅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날의 흔들림이 희미하게 남아, 마치 파도의 잔물결처럼 간헐적으로 떠올랐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일본의 풍경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숨겨진 자연의 힘, 그리고 그 앞에서 느꼈던 인간의 무력감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익숙했던 풍경들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항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분주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활기찬 소음이 가득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문득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도 혹시 내가 겪었던 불안감을 느꼈을까? 무사히 돌아가 안심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점점 멀어져 가는 일본 땅, 그 위로 뉘엿뉘엿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미야즈 해수욕에서 느꼈던 파도와 흔들림의 기억은 이제 붉은 노을처럼 아련하게 번져갔다. 낯선 땅에서 겪었던 불안함과, 그 속에서 느꼈던 작은 안도감들이 뒤섞여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익숙함이었다. 공항의 풍경, 사람들의 말투, 심지어 공기의 냄새까지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가족들의 따뜻한 포옹은 낯선 곳에서 움츠러들었던 나를 다시금 일상으로 부드럽게 이끌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온몸을 감싸는 익숙한 온기에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미야즈 해수욕장의 푸른 파도와 함께 느껴졌던 그날의 흔들림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은 단순히 두려움으로만 남아있지 않았다. 낯선 환경 속에서 느꼈던 불안감, 그리고 그 속에서 작은 도움과 질서를 통해 안정을 찾아갔던 경험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resilience(회복력)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파도와 흔들림. 전혀 다른 두 가지 감각이 공존했던 미야즈 해수욕장은, 그래서 더욱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특별한 장소로 남아있을 것이다. 낯선 땅에서 겪었던 특별한 경험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예상치 못한 파도와 흔들림을 마주하더라도, 그 속에서 다시금 평온을 찾아나갈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선물해 주었으리라 믿는다. 익숙한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 속에서, 나는 그렇게 낯선 여정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https://youtu.be/Xh3ZbCOpQEc?si=wVSKT1gDYtqQEK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