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농사 외로운 손길, 알록달록 수건 아래 굽은 허리 펴는 할머니들

봄바람이 콧등을 간질이는 계절, 어김없이 고향의 들판은 푸른 생명으로 꿈틀거립니다.

겨우내 잠자던 논밭은 기지개를 켜고, 따스한 햇살 아래 어린 모들이 초록빛 융단처럼 펼쳐지지요.

하지만 활기찬 풍경 속에서도 제 눈길을 사로잡는 건, 다름 아닌 알록달록한 수건을 머리에 덮어쓰신 할머니들의 모습입니다.

굽어진 허리에 의지한 채 밭고랑을 따라 걷는 모습, 햇볕을 가리기 위해 질끈 묶은 수건 아래로 보이는 깊게 패인 주름은 그 세월의 무게를 짐작게 합니다.

호미 자루를 쥔 투박한 손은 흙투성이지만, 그 손끝에서 피어나는 땀방울은 땅심을 닮아 숭고하고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할머니의 수건 자락을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쨍한 파란색, 꽃무늬가 수놓인 빨간색, 때로는 바랜 듯한 흰색까지.

할머니의 수건은 햇볕을 막아주는 그늘이자,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었고, 때로는 힘든 농사일 속에서 잠시 얼굴을 가리는 위안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도시에서 생활하는 동안, 농촌의 풍경은 잊혀진 듯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고향을 찾았을 때, 변함없이 수건을 머리에 쓰신 할머니들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텅 빈 농촌을 묵묵히 지키며 땅을 일구는 것은 이제 할머니들의 몫이 된 듯했습니다.

논둑에 앉아 새참을 드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정겹습니다.

쭈그러진 양은 그릇에 담긴 투박한 음식일지라도, 함께 나누는 따뜻한 마음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값집니다.

잠시의 휴식 후, 할머니들은 다시 묵묵히 밭으로 향합니다.

그들의 굽은 등은 마치 삶의 고단함을 짊어진 듯 보이지만, 그 발걸음은 한없이 굳건합니다.

봄볕 아래 알록달록한 수건을 쓴 할머니들의 모습은, 제게 단순한 농촌 풍경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척박한 땅을 일궈 생명을 키워내는 숭고한 노동의 현장이자, 굳건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뭉클한 풍경입니다.

어쩌면 그 수건은, 거친 세월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지켜온 할머니들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요.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푸르렀던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풍요로운 결실 뒤에는, 묵묵히 땀 흘린 할머니들의 노고가 숨겨져 있음을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봄이면 어김없이 들판을 채우는 알록달록한 수건들의 풍경을, 따뜻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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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은 따스하지만, 텅 빈 들녘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운마저 감돕니다.

푸릇한 새싹들이 돋아나는 활기찬 계절이지만, 드넓은 논밭을 홀로 지키는 할아버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합니다.

굽어진 허리를 애써 펴보지만, 굳어진 관절은 야속하게 삐걱거립니다.

거친 손으로 흙덩이를 매만지던 할아버지는 잠시 호미를 내려놓습니다.

햇볕에 그을어 깊게 패인 주름진 입가에 하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입니다.

훅, 내뿜는 연기는 봄바람에 흩어져 하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 연기 속에는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고독한 농사일의 고단함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의 논밭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며 모를 심고, 뜨거운 햇볕 아래 땀 흘려가며 풍년을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늙고 병든 몸뚱이와 텅 빈 들녘만이 할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떠나간 자식들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고, 묵묵히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담배 연기가 잦아들 무렵,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그 한숨 속에는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서글픔, 그리고 앞으로 짊어져야 할 농사일에 대한 막막함 등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리고 땀 흘린 만큼 정직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다시 굳건히 일어섭니다.

낡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다시 밭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이지만, 그 발걸음은 묵직합니다. 굽어진 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새겨진 깊은 주름은 그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험난했는지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척박한 땅을 일궈 자식을 키우고, 묵묵히 삶의 터전을 지켜온 강인한 생명력이 숨 쉬고 있습니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할아버지의 담배 연기는, 잠시나마 텅 빈 들녘에 드리워진 고독을 희석시키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할아버지는 다시 홀로 묵묵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그의 굽은 등은 외로워 보이지만, 그 손끝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은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부디 할아버지의 땀방울이 풍요로운 결실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그의 깊은 한숨이 기쁨의 탄성으로 바뀌기를 조용히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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