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를 품은 산책, 오륜대 부엉산과 해동수원지

도시의 소음이 아득해지는 곳, 부산 금정구와 기장군의 경계에 걸쳐 고요히 숨 쉬는 해동수원지(회동수원지)와 그 곁을 지키는 부엉산을 걷는 것은 언제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의식과 같습니다. 특히 수원지를 감싸 안고 있는 오륜대(五倫臺) 절벽을 올려다보며 걷는 길은 자연이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수필 한 편을 읽는 것과 같았습니다.

햇살이 넉넉하게 쏟아지던 오후, 오륜대 마을 입구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수원지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어 부산 시민의 식수원이 되었던 곳이라, 긴 세월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되어 그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0년 개방된 수변 산책로는 호수와 산이 빚어낸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을 선사했습니다.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물빛은 미묘하게 변합니다. 잔잔한 수면은 하늘의 푸른빛과 숲의 초록빛을 반사하며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옥색으로 빛납니다. 수변을 따라 잘 조성된 데크길을 걷노라면, 숲에서 불어오는 솔향기와 물 위를 스치는 바람이 땀을 식혀줍니다. 이곳의 시간은 도시의 시계와는 다르게 흐르는 듯, 모든 것이 느리고 평화롭습니다.

수변길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오늘의 주인공인 부엉산(부엉덤)이 그 늠름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부엉산은 해발 175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정상 부근의 수직 절벽인 오륜대의 위용 때문에 예부터 절경으로 손꼽혔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숲속으로 파고들기를 잠시, 숨이 턱 막힐 때쯤 부엉산 정상의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전망대에 서서 내려다본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 없이 해동수원지 전체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수원지의 물길과 건너편의 땅뫼산 황톳길이 마치 살아있는 지도처럼 보였습니다.

그 물길은 멀리 금정산과 아홉산의 능선 아래로 녹아들며, 자연의 거대한 품을 느끼게 했습니다.
문득, 이곳이 과거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유람지였다는 기록이 떠올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댐이 건설되고 옛 풍경은 물속에 잠겼지만, 호수가 주는 새로운 아름다움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었습니다. 부엉산 바위 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 역시 잠시 세상의 근심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한 충만함을 느꼈습니다.

다시 산을 내려와 오륜본동 마을을 지납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래된 집들과 고요한 마을의 풍경은 시간 여행을 하는 듯 정겹습니다. 마지막으로 땅뫼산 황토길을 맨발로 걸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오늘은 수원지의 고요함을 더 깊이 느끼고 싶어 다시 수변 산책로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해동수원지 둘레길을 걷는 것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물과 산, 그리고 숲이 들려주는 고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명상의 시간입니다. 부엉산의 웅장함과 수원지의 평온함이 교차하는 이 길은,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가장 순수한 형태의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는, 부산의 숨겨진 보물과 같았습니다.
호수의 푸른 물결을 마음에 담고, 흙길이 주는 포근함을 발끝으로 느끼며,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작은 용기와 큰 평안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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