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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눈/여행마스타

성곽을 따라 흐르는 시간 금정산 남문에서 동문까지의 여정

by 잡학공장 202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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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따라 흐르는 시간 금정산 남문에서 동문까지의 여정

​금정산(金井山)은 부산 시민의 든든한 쉼터이자, 고즈넉한 역사를 품고 있는 거대한 성곽의 전시장이다. 특히 금정산성 4대문 중 남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산행의 묘미와 역사의 흔적, 그리고 장쾌한 부산의 풍경을 한 번에 담아내는 '시간 여행'과 같았다.


​오늘 산행의 출발점은 해발 540m에 위치한 남문이었다. 금정산의 남쪽 능선이 잘록하게 내려앉은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남문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문지기처럼 보였다. 웅장한 홍예문(무지개 모양의 문)을 통과해 산성 안으로 들어서자, 성 밖의 번잡한 도시의 소리는 이내 옅어지고 맑은 산새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남문에서 동문으로 향하는 길은 금정산성의 성곽 트레킹의 정수이다. 처음에는 완만한 흙길이 이어지며 마치 조선 시대 국경을 따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길은 대체로 능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크게 가파르지 않지만, 발아래 흙길을 따라 걷는 내내 양옆으로 펼쳐지는 성곽의 모습은 가슴을 벅차게 했다.


​특히 이 코스는 고요함 속에 숨겨진 조망의 즐거움이 대단했다. 성곽이 잠시 끊어지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왼쪽(서쪽)으로는 산성마을과 낙동강 물줄기가, 오른쪽(동쪽)으로는 부산의 도심과 동래구가 한눈에 펼쳐졌다. 옛 선조들이 이 성벽을 따라 걸으며 나라를 지켰을 그 시선이 어떠했을지 잠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바람이 성벽을 타고 불어올 때마다, 수백 년 전 역사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발걸음을 재촉해 제2망루와 대륙봉을 지나쳤다. 망루는 성벽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곳에 서서 눈을 감고 옛 군사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들은 이 망루에서 쉴 새 없이 바다와 들판을 감시하며 평화를 지켜냈을 것이다. 현대의 우리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지만, 이 돌 하나하나에 스며든 지난날의 땀방울과 긴장감을 생각하니 등산화 밑으로 느껴지는 땅의 무게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코스가 동문 가까이 접어들수록 숲은 더욱 울창해졌고, 길은 서서히 내리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을 걸으며 짙은 피톤치드를 들이마셨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으나, 오랜 세월 자연과 동화된 성벽의 모습은 여전히 웅장하면서도 겸손했다.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동문에 도착했다. 해발 415m의 잘록한 고개에 자리 잡은 동문은 남문과는 또 다른 견고함으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동문 주변에는 쉬어갈 수 있는 공간과 버스 정류장이 있어, 도시와의 연결성을 느끼게 했다.

​남문에서 동문까지의 산행은 단순히 걷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산의 기운과 역사의 숨결을 동시에 경험하는 트레킹이었다. 금정산의 푸른 숲은 지친 몸을 위로했고, 웅장한 금정산성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뿌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시야, 그리고 성곽을 따라 흐르는 고즈넉한 시간을 가슴에 담고, 나는 다시 동문 앞 버스 정류장에서 현실의 시간 속으로 돌아왔다. 이 성곽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든든한 부산의 보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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