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운 가위눌림

한밤중, 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깊은 잠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또렷한 의식이 주변의 어둠을 감지했다. 눈을 뜨려 했지만, 마치 강력한 자석에 붙들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몸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익숙한 듯 낯선 이 답답함,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가위눌림이었다.
그때, 희미한 형체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얼굴,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슬픔인지 원망인지 모를 깊은 눈빛. 여자의 형상이었다. 싸늘한 기운이 더욱 강렬해지며, 그녀가 천천히 내 위로 다가왔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은 굳게 닫힌 채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나를 꿰뚫는 듯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왔다는 듯, 깊은 슬픔이 담긴 눈빛은 애처로우면서도 섬뜩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나의 목으로 향하는 듯한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더욱 심해졌다. 벗어나야 했다. 이 차갑고 슬픈 존재로부터, 이 끔찍한 공포로부터 있는 힘껏 손가락을 꿈틀거려 보았다. 미세한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절망적인 순간, 문득 작은 빛이 떠올랐다. 아주 작은 의지의 불씨.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온 정신을 집중하여 손끝에 힘을 주었다. 느껴지지 않던 감각이 아주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마치 얼어붙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하듯, 아주 느리고 더디게.
손가락, 발가락, 어깨, 팔… 온몸의 감각을 하나씩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작은 빛을 따라가듯, 희미한 감각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천천히 눈을 완전히 뜨자, 어둠 속에 희미하게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몸은 무거웠지만, 짓누르던 압박감과 싸늘한 기운은 사라지고 없었다. 깊게 숨을 쉬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꿈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현실이었을까. 알 수 없었지만, 그 강렬했던 공포의 잔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 귀신의 형상은 어쩌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불안과 슬픔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차갑고 슬픈 그녀의 눈빛은, 어쩌면 나 스스로 외면하고 싶었던 내 마음의 그림자였을지도 모른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난 후에도, 그 잔상은 오랫동안 남아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동시에, 그 경험은 나에게 내면의 어둠을 직면하고, 스스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잠자리에 들기 전, 혹시 또다시 그 차가운 존재와 마주하게 될까 봐 불안감에 휩싸였다. 방 안의 작은 그림자조차 섬뜩하게 느껴졌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마치 악몽의 잔재가 현실까지 스며들어 나를 따라다니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경험은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꿈속에서 마주했던 그 슬픈 눈빛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왜 그토록 애처롭고, 동시에 원망스러웠을까? 혹시 그것은 정말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의 투영은 아니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내 안의 어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억눌렀던 슬픔, 외면했던 불안, 그리고 풀지 못했던 응어리들이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여자 귀신의 형상은 어쩌면, 그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라고 나에게 보내온 무언의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용기를 내어, 그동안 회피해왔던 감정들과 마주했다. 일기를 쓰며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끄집어냈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늘렸다. 때로는 친구에게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수록 밤의 공포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물론,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문득 그 차가운 시선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전처럼 두려워 떨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 형상이 내 마음의 그림자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존재하듯, 내 안의 어둠 또한 내가 직면하고 이해해야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가위눌림은 여전히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경험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내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잠시 멈춰 서서,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속삭이는 여자 귀신의 형상을 통해,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의 어둠과 마주하고,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섬뜩했던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밤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 나는 이제 희미하게나마 내 안의 빛을 찾아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