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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매립지에서 시작된 새로운 인생

by 잡학공장 2025.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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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지에서 시작된 새로운 인생



1장 - 추락하는 소년

1983년 가을, 부산 영도공업고등학교 2학년 김태호는 학교 최고의 문제아였다. 성적은 꼴찌, 지각과 결석은 일상, 선생님들과의 마찰은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부두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장에서 생선을 팔았다.

"이 새끼야! 또 무슨 사고 쳤다고 학교에서 전화 왔냐!"

집에 돌아오면 늘 아버지의 주먹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호는 점점 더 집을 피하게 되었고, 거리를 배회하며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일곱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모두 가정에 문제가 있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여겼고, 누군가 건드리면 모두 함께 맞섰다.

"형, 오늘도 오락실 갔다가 부산진구 새끼들한테 당했어요." 1학년 후배 민수가 얼굴에 멍을 든 채 찾아왔다.

태호의 혈관에 분노가 흘렀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은 동료들뿐이었다.

2장 - 운명의 약속

"내일 오후 3시, 부산진구 매립지에서 만나자."

메시지는 간단했지만 의미는 무거웠다. 이번에는 단순한 몸싸움이 아니었다. 양쪽 모두 20명 이상이 모일 예정이었고, 각자 준비해 온 것들이 있었다.

태호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흥분해서였다. 드디어 자신들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태호야, 너 요즘 얼굴이 왜 그리 험상궂어졌냐?"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태호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거울을 봤다. 17세 소년의 얼굴에는 이미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3장 - 매립지의 혈투

부산진구 매립지는 바다를 메워 만든 넓은 공터였다. 주변으로는 공사용 자재들이 널려있고,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완벽한 '전쟁터'였다.

오후 3시, 양쪽에서 각각 25명씩 모였다. 태호와 그의 친구들은 각자 준비해 온 각목과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상대편도 마찬가지였다.

"너희들이 우리 동생들 건드렸다며?"
"웃기지 마. 시비 건 건 너희들이잖아."

대화는 길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각목을 휘둘렀고, 순식간에 50명의 고등학생들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태호는 미친 듯이 파이프를 휘둘렀다. 누군가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자신의 어깨도 각목에 맞아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이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4장 - 돌이킬 수 없는 순간

싸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태호가 휘두른 쇠파이프가 상대편 학생의 머리를 강하게 가격한 것이다. 그 학생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야! 쟤 안 일어나는데?"

순식간에 싸움이 멈췄다. 쓰러진 학생 주변에는 핏웅덩이가 생겼고,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구급차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야, 도망가자!"

모든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태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피 묻은 파이프를 보며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아니 목숨을 빼앗을 뻔했다는 사실이 뇌리를 강타했다.

5장 - 감옥에서의 각성

태호는 소년원에 보내졌다. 다행히 상대방 학생은 의식을 되찾았지만, 심각한 뇌진탕으로 오랜 치료가 필요했다. 태호는 중상해죄로 2년간 소년원 생활을 해야 했다.

소년원에서의 첫날 밤, 태호는 처음으로 울었다. 어머니가 면회 올 때 보인 실망과 절망의 표정,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정말 인간 쓰레기구나..."

하지만 소년원에서 태호는 한 사람을 만났다. 교도관 이성민이었다. 그는 다른 교도관들과 달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했고, 태호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태호야,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단지 방향을 잘못 잡았을 뿐이지."

이성민 교도관은 매일 저녁 태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태호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6장 - 책 속에서 찾은 새로운 세상

처음에는 억지로 펼쳐본 책이었지만, 태호는 점점 독서에 빠져들었다. 『홍길동전』에서 시작해서 『춘향전』, 『흥부전』 같은 고전부터 현대 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태호는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폭력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진짜 강한 사람은 주먹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저도 나중에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이성민 교도관에게 물었을 때, 그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지금부터 정말 열심히 해야 해."

태호는 그날부터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자신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7장 - 새로운 시작

2년 후, 소년원에서 나온 태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년원 출신을 누가 뽑겠어?"

알바 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태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사장에서 일하며 학원비를 벌었다.

어머니는 변한 아들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태호야, 엄마가 미안하다. 그동안 너한테 관심을 못 가져줘서..."

"엄마, 저야말로 죄송해요. 이제 진짜 사람답게 살게요."

8장 - 운명적 만남

1986년, 태호는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나이는 다른 학생들보다 많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같은 과 선배인 김미경이었다. 그녀는 태호의 과거를 알고도 그를 피하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야. 지금의 태호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미경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태호의 마음은 완전히 녹아버렸다. 그녀는 태호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9장 - 속죄의 시간

대학 3학년이 되던 해, 태호는 큰 결심을 했다. 매립지에서 자신이 다치게 한 그 학생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박정수. 그 학생의 이름이었다. 태호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정수는 현재 작은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날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수야... 나 김태호다."

전화기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뭐하러 전화했어?"

"너한테 사과하러 왔어. 직접 만날 수 있을까?"

10장 - 진정한 용서

정수와의 만남은 태호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정수는 태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담담했다.

"나도 그때 각목 들고 나갔잖아. 서로 잘못한 거야."

하지만 태호는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정수야, 정말 미안해. 평생 속죄하며 살게."

"일어나. 이제 됐어. 근데 너 진짜 많이 변했네."

두 사람은 그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아픔과 성장을 나누며, 진정한 화해를 했다.

11장 - 새로운 꿈

태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소년보호기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미경이와는 결혼해서 작지만 따뜻한 가정을 꾸렸다.

"선생님, 저 같은 놈도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상담실을 찾아온 한 소년의 질문에 태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야. 나도 너보다 더 나쁜 짓을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잖아."

12장 - 매립지를 다시 찾아서

2000년, 40대가 된 태호는 가족과 함께 부산진구 매립지를 다시 찾았다. 그곳은 이제 아름다운 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아빠, 여기가 아빠가 말한 그 곳이야?" 중학생이 된 아들이 물었다.

"그래. 여기서 아빠는 정말 큰 실수를 했지. 하지만 그 실수 덕분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

태호는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매립지를 바라봤다. 20년 전 그 끔찍한 사건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분노가 아닌 이해로,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에필로그 - 진정한 승리

2020년, 태호는 소년보호기관의 원장이 되어 있었다. 그가 도운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했다.

정수와는 지금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두 사람 모두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사건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립지에서의 그 싸움은 태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지만, 동시에 가장 큰 축복이기도 했다. 진정한 강함은 주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어."

이것이 태호가 상담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매립지에서 시작된 그의 새로운 인생이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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